영화이야기
마스터, 변기를 박살내는 장면을 보고
낡은등대
2019. 10. 5. 03:09
프레디(호아킨 피닉스)는 구치소로 끌려와 구금된 직후 난리를 떨어댄다. 분을 이기지 못한 거 같기도 하고 아직 발산되지 못한 어떤 에너지를 마저 터뜨려버리는 거 같기도 한데, 구치소 변기까지 걷어차서 부숴버리는 강렬한 이 장면이 계속 생각난다. 프레디는 왜 그랬을까.
유사종교자인 랭거스터 도드(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의 사이비성에 열받은 거 같지도 않고, 도드를 체포한 공권력에 저항하는 제스처도 아닌 거 같다. 프레디에게는 그냥 언제 그렇게 굴어도 이상하지 않을 기운이 느껴진다. 방향성없는 힘이, 무엇 때문일지는 몰라도, 잠시 멈춰있을 뿐이라서 그 매개체가 잠깐 틀어지면 언제라도 어느 방향으로든지 터질 거 같은 그런 기운 말이다.
그가 겪은 건 전쟁 트라우마인 거 같다(고모와 동침까지 할만큼 굴곡의 삶 속의 상흔이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누구에게라도 생존은 작고 큰 트라우마들의 누적치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살아냄, 종의 영속성을 위해 분투하는 생의 에너지의 뿌리는 고통과 불안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왜 살아"내고", 영속성을 "위할"까?
이때 뭔가가 필요하다. 술이든 이론이든 집단이든 섹스든 말이다. 우리가 탐닉하는 것들이 생명을 살아내게 하고 우리는 살아내면서 또 무언가를 탐닉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