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
하염없이 걷다보면 생각이 없어진다.
어쩌면 무슨 생각을 하긴 하는데
바로바로 사라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걷고 또 계속해서 걸으면
걷는 것 자체가 어느순간 목적이 되고
그 단순한 목적 때문에
다른 목적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고민하던 회사일도
신경쓰이는 좋아하고 미워하는 사람들도
내 안에 계속 꿈틀대는 게 느껴지는 나쁜 마음도.
그때도 그렇게 걸을 때였다.
뭔가를 생각하며 걷는 것 같았는데
아무것도 생각하지 얂고 있단 느낌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모르는 곳이었다.
나는 당황했고, 지도맵을 켜기 위해 핸드폰을 켰다.
몇년째 쓰고있던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되어 전원이 꺼져 있었다.
이어폰이 아무 의미가 없었단 걸 그제야 깨닫고
귀에서 빼 주머니에 넣었다.
어쩔줄을 몰랐다. 집에 가야하는데.
아무 소용도 없는 걸 알면서
사방을 둘러보고 있을 때,
그사람이 내 팔을 부드럽게 잡으며 반갑다고 말을 걸었다.
정말로 부드러웠다.
그리고 마치 날 잡을 걸 알았던 것처럼
난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여기서 이렇게 만날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이렇게 만나게 된다면 틀림없이 놀라 자빠질거라고
종종 생각해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만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인사를 준비했던 사람처럼
평소 어눌한 나답지 않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 사람은 날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난 길을 잃었다고 말한적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내가 길을 잃은 걸 알고있단 사실에도
난 놀라지 않았다.
그 사람과 익숙한 곳까지 오자마자
그 사람은 애당초 사라졌다.
원래 있지 않았던 사람처럼 아예 없어져버렸다.
분명히 없었던 사람이라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렇다면 길 잃은 날 누가 데려다준거지, 싶었지만
곧 알아차렸다, 그 사람이 날 데려다준 게 맞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