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하루, 진짜와 솔직함
A : 영화 어땠어?
B : 아트하우스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보통 가산점이 붙잖아ㅎㅎ
A : 높은 점수는 어디서 나온 거야?
B : 우선 주제가 흥미로웠어. 감독이 친절하게 주제를 군데군데에서 꼭 짚어 말해줘서 큰 고민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기도 했고. 근데 주제를 잘못 짚었으면 어쩌지?
A : 주제가 뭐였다고 생각해?
B : 내 생각에는, 한마디로 진짜와 솔직함인 거 같아. 일단 주인공부터가 배우잖아. 남주는 소설가이고. 첫 만남에서 둘 다 자기가 하는 일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소개하는데, 재미있지. 한 명은 글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말과 행동으로 거짓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이니까.
A : 너무 극단적인 자기소개였던 거 같아.
B :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그 점이 재미있었다고 생각해. 한 편에서 소설과 연기는 정말 가짜지만, 사실은 진짜의 모형이거든. 여주인공이 이렇게 말하잖아, "연극이란 게 할 땐 진짜거든요. 끝나면 가짜지만" 이라고. 대본도 있고 상황도 주어진 것이겠지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진실하겠지. 특별히 주인공은 배우니까 말이야. 료헤이에게도 주인공은 가짜지만, 거기에 삶을 대입해 읽고 자기가 묻혀지는 것 같다고 고백한 잡지 기자에게는 그건 진짜야. 자기의 거울이고 모형일테니까.
A : 그렇다면, 어쩌면 이 영화는 사랑이란 감정을 참 잘 그린 영화인 거 같아. 자기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면 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은 진짜가 안되고 관계는 가짜가 되어버리잖아.
B : 맞아. 여주인공 은희가 뭐 정말 누굴 엿먹이려고 작정하고 결심한 날은 아니었잖아. 그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하루였는데 모두에게 가짜가 되어버리고 앞으로 그들에게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으로 영영 기억되겠지.
A : 그러고보니, 은희가 처음부터 읊조렸을 대사에서 이미 힌트가 나왔네. "'진짜란 게 뭘까요. 전 솔직했을 뿐인데"라고 하지 않았나? 하지만, 그 진짜와 솔직은 애시당초 다른 것일 수도 있잖아.
B : 음, 그렇겠네. 진짜 여자친구가 되려면 솔직한 자기의 욕망을 가려야 할 테니까. 이걸 드러내는 데 남녀관계만큼 유용한 도구가 없지.
A : 나도 그렇게 생각해. 공동체적 수준에서 진짜와 내면의 솔직은 원래 호환이 잘 안되는 모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