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어히어로, 히어로에 대한 정치적인 기대감을 걷어 버리고
좀비 영화에 드리워진 불길한 정치성
비단 아이엠어히어로에 국한되어 받은 느낌은 분명히 아니다. 동일한 느낌을 나는 부산행에서도, 28 시리즈에서도, 그리고 데드셋을 포함한 드라마에서도 느꼈는데, 나는 이게 다소 짙게 깔린 정치적 보수성에 기인한다고 본다. 영화 내에서 기존 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질서가 재편되는 때에 성악설을 들고 일어나는 꼴을 보자니, 대선을 비롯한 주요 선거 때마다 북풍을 빌미로 트집 잡는 거대 여당의 유치한 협박을 마주하는 거 같다. 제로 베이스에서 새롭게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흔치 않은지, 주인공과 같이 만화를 그리는 루저 동료의 외마디(모두가 평등해졌는데 왜 하필 날 물었냐고! 와 같은 외침이었던 거 같다)의 처절함이 잘 말해주지 않나. 어렵게 맞이한 새로운 세계와의 조우에서, 좀비의 동물적인 공격성과 기타 SOC의 부재가 주는 위험함 만으로 스릴을 이끌어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일까.
이러한 맥락을 무척이나 아쉬워하는 건, 좀비 사태 전후로 우리가 몸 담게 되는 법과 질서에 대해 영화들이 상이한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좀비 사태가 주는 과격한 변동을 강조하기 위함인지는 몰라도, 늘 사태 이전 사회는 평온하고 문제가 없는 상태로 시작된다. 비록 일부 영화가 루저들의 만족도 낮은 삶을 보여주곤 있지만 지극히 제한적인 샷에 머물 뿐이다. 적어도 이전 사회는 안전했고 평온했다.
그러나 좀비가 세상을 휘젖고 다니는 순간, 질서에 대한 영화들의 시각은 급변한다. 음식과 안전한 물을 가진 자들의 악행, 여성에 대한 강간, 감금과 구타, 온갖 부조리가 소 공동체에 난무하고 주인공들은 대체로 좀비를 포함해 이 악행이 법이 된 준거집단으로부터 회피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게 된다. 질서와 법은 가진 자들이 가지지 못한 무언가를 더 갖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지고,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게 되는 것은 오직 인간의 악한 본성을 다스려 줄, 혹은 그로부터 도망가게 해줄 히어로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마주한 지금의 법과 질서의 원류는 이것과 얼마나 다른가? 우리의 법은 지극히 선하고, 충분히 교화되었는가? 지금도 우리는 누군가가 법과 질서를 통해 누군가가 부도덕한 방법으로 무언가를 갖도록 돕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는 마르크스 이론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인간에 대한 무한한 신뢰라고 했다. 실천적인 수준에서, 그리고 그것도 경도된 레닌주의에 대한 비판일 수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때론 우리는 그런 가정을 한 번 해봐야 할 순간도 있지 않을까. 한 명의 히어로가 아니라, 새로운 꼬뮌에서 재편되는 평등과 애정, 적당한 결속과 자유를 기대하기에 우리는 너무 겁이 많은 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