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퓨리, 종교와 전쟁

낡은등대 2016. 12. 12. 01:38

 

 

 

인간이 인간을 해치다

 

  우선 개인적으로 반전(反戰)영화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러한 느낌을 <웰컴 투 동막골>. <고지전>에서 받았었는데, 이상의 영화가 "적군"의 인간미를 드러내는 전략을 취했다면 <퓨리>는 "아군"의 잔혹함을 수치스럽게 벗겨내는 방법을 취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나는 거 같다. 우리가 전쟁의 참상을 마주하는 지점은 인간성의 훼손인데, 동네를 돌아다니는 미친 개가 아이를 물어죽였다거나 굶주린 계곡의 불곰이 여행객을 해쳤다는 소식을 마주하고서는 전쟁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반전영화는 관객이 서사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에 몰입하게 되는 영화 속 불평등을 상쇄시키고자 상대방의 인간적 고고함이나 우리편의 인간적 추함을 영화적 문법에 따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해야 하는데, <퓨리>는 후자를 택한 모양이다.

  "워대디(브래드 피트)" 분대가 보여주는 반이성적이고 비인간적인 모습은 곳곳에서 나타나는데, 독일 민간인인 "엠마"의 집에서의 파티 중 벌어진 난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기억에 남는다. 여성(을 포함한 소수자라고 읽어도 될지 모르겠다)에 대한 고압적 태도, 사랑과 인간적 애정을 업신여기고 비꼬는 언행, 사교적 만찬에 대한 모욕, (비록 그것의 위계적인 성격이 인간적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질서를 상징하는 상급자 워대디에 대한 조롱. 뭔가 불편하고 질서에 대해 긴장을 부여하는 주범이 바로 주인공(우리편)임을 기억하자.

 

전쟁 속 종교

 

  가장 몰입했던 장면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그려진 "바이블"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중략)... 내가 여기 있나이다 저를 보내소서"라는 성경 구절을 암송할 때에 그동안 종교적인 것에 대해 콧방귀를 뀐 것처럼 그려진 "워대디"가 그 구절이 위치한 "이사야서 6장"을 맞추는 장면이었다. 워대디는 자신이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숨기거나 외면했던 것일테고, 그의 태도는 전쟁이라는 참상과 신의 전능함이 양립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한 가지 대답이었을 것이다. 

  전쟁 속에서 인간은 종교를 애써 붙잡거나, 혹은 종교를 의도적으로 거부해야만 버틸 수 있는 모양이다. 인간성의 참혹한 훼손을 마주하고 이에 대한 구원을 동족에게서 기대하기 어려울 때, 이러한 참상이 벌어지는 원인과 그것이 하필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유를 물을 때,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구원을 구하거나 구원의 지체에 대한 이유를 물을 때, 인간은 종교적으로 변하는 모양이다. 그의 세례명이 "바이블"이든 "머신"이든, 왜 아직 죽지 않았냐는 질문에 "운이 좋아서"라고 대답하든 "하나님이 아직 우리를 부르지 않아서"라고 대답하든지 상관없이 말이다. 삶의 현장을 전장이라고 묘사할 만큼 전쟁과 같이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지체와 이에 대한 신의 침묵을 기다리고 버텨낼 수 있는 위로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