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터널 애니멀스, 섬세했던 A에게
A양은 아연했을 겁니다. 성년도 미처 채우지 못한 어린 나이에 B군의 세계에 들어와야 했으니까요. A양은 친구의 소개로 한 모임에 가입하게 되었는데, 사실 그 곳은 B군의 나와바리였거든요. A양과 B군이 곧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A양은 그 모임을 아무래도 B군의 세계로 보게 되었을 겁니다. 사랑하게 되면 상대방에게서 관심을 뗄 수 없으니, 보통 초반에는 더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A양은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그 모임에서 겉돌게 되었고, 그 모임에서 극성분자였던 B군은 곧 그 점을 알아차렸던 모양입니다. 사실 B군이 A양에게 꽂혔던 이유 중 한가지는 A양의 가입을 통해 그녀가 가진 모종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굉장히 아연한 것이었으니 B군의 마음이 변하는 건 사실 시간문제였달까요. 물론 시간이 지나면 A양도 B군에게서 눈을 돌려 다른 걸 볼 수 있었을텐데, A양의 사랑이 가진 지속성과 B군의 열정이 가진 조급함의 콜라보는 결국 그 둘을 파국에 이르게 했지요. 울면서 설명을 요구하는 A양에게 B군은 이런 투로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넌 너무 약해"
(스포 있습니다) 나약하다는 이유로 사랑의 배신을 당했던 에드워드(제이크 질렌할)는 수잔(에이미 아담스)을 바람맞히는 것으로 나름 복수의 칼을 꽂았고, 아내와 딸이 강간살해당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방조할 수 밖에 없었던 토니는 범인을 처단하는 것으로 보복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A양이 떠올랐습니다. 그녀의 복수는 성공했을까요?(그녀는 B군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주겠다고 했다더군요..) 나약한 그들의 자력구제는 어딘가 어설플 수밖에 없어서 에드워드가 약속에 나가지 않는다(!!)는 엔딩은 거창한 배경음악에 비하자면 굉장히 초라했고 토니는 몇번이나 범인을 놓친 주제에 큰 고통도 안겨주지 못하고 단방에 허무하게 범인을 보내버렸습니다(악마를 보았다의 이병헌을 떠올려 보면...).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나마도 성공한 편입니다. 대부분은 그나마도 성공하지 못해서, 상대방은 자신이 복수의 대상이라는 것도 잘 모를 거거든요.
복수할 기회라는 것조차 사라지도록 폭력의 뿌리가 뽑혀버린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무래도 요원하니 그들에게도 복수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하겠는데, 아무래도 이건 어려운 문제인 거 같네요. 일단 한방을 먼저 먹은 사람이 되갚아주는 게 복수라면, 선빵을 날린 사람들은 대체로 강하데다가 마음이 완고할테고 얻어 맞은 사람들은 그만큼 반대로 유순한 사람일 테니까요. 모든 복수가 이런 역학관계에서 시작하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래도 이런 상황이다보니 대부분의 복수라는 게 좀 하기는 어렵고, 하고나면 대체로 통쾌하고 짜릿하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이러니 권력의 해체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겠군요).
에드워드와 막 사랑을 틔우기 무렵의 수잔은 에드워드는 너무 약하다며 결혼에 반대하는 자기 엄마에게 이렇게 일갈합니다. "그는 약한 게 아니라 섬세한 거야." 이 말이 대단치는 않겠지만 A양에게 위로의 인사를 이렇게 건네고 싶네요. 넌 약한 게 아니라 섬세한 거였어, 라고 말이죠. 글쎄요, 또 모릅니다. 누구보다 따뜻하고 포근한 그들의 영혼은 저 작은 말 한마디에 담겨있는 인정과 칭찬을 크고 깊게 새기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만큼의 역량을 가지고 있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