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느와르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소재는 뭐니뭐니해도 정치깡패가 아닐까.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거대 권력이 그 우아함과 세련됨의 마스크 뒤에서 물리적인 폭력과 노골적인 섹스를 기꺼이 파트너로 삼고 있다는 영화적 설정에 대해 우리는 비단 처음에 충격을 받았었겠지만, 어느새 너무나 진부한 클리셰가 되어버려 지겹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추악한 자태가 더이상 설정이 아니란 걸 매일같이 뉴스로 접하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이러한 메시지가 잔소리와 같은 피로감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절대선이 없는 권력의 진흙탕 속 개싸움을 보고 있노라면 공허한 마음이 든다. 누군가를 응원하기엔, 혹은 누군가에 대해 정서적으로 몰입하기엔 모두가 더럽고 비열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어느 순간 액션물로 영화를 대하게 되고, 칼과 피와 총성을 오락물마냥 바라보게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누적된 정치적 피로도에 대해 한국 느와르의 과도한 폭력성을 탓하고 싶건만, 그림자에 대해 꾸짖어봐야 무엇할까. 오늘 종로에서 백남기 농민의 죽음과 부검 논란을 놓고 시위가 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국가 폭력을 어떻게든 변명하려고 세상을 떠난 한 사람의 몸을 가족에게서 빼앗는다는 이 기가 막힌 스토리가 어찌 이 영화의 설정보다 덜 잔인하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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