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하고 나면
내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마치 머리잘린 삼손처럼
꼬장꼬장하게 지내오면서도
빠득 우겨온 내 삶의 힘이
어디론가 간 데 없어진 거 같은.
이제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는데도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이런 사춘기 질문이 지워지지 않고
나는 다시는 내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상하고도 묘한 감정이 술기운과 함께 올라온다
나이를 먹고나서도 나는
내 삶을 인정하지 못할 것만 같고
잘 살았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 자랑 혹은 연민조차 못할 만큼
내 자신이 무척이나 망가졌다는 느낌을
나는 매번 회식 때마다 받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게 미덕이 되고
남들 부러워하는 걸 같이 부러워하게 되는 건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철부지없이도 지금 내가
역겹고 토할 것만 같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지 몰라도
나는 늘 예전이 그립고
그 때의 나를 진짜 나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잠시 지나가는 때라고
진짜의 날 보여줄 때는 아닌 거라고
되지도 않는 거짓말 뒤로
숨어버리고 나면
아까의 술기운은 잠이 되어
나는 또 그렇게 다음 아침을
그렇게 결국 다시 살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