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회식 후에

낡은등대 2018. 1. 4. 22:29




회식하고 나면

내가 그렇게 초라할 수가 없다

마치 머리잘린 삼손처럼

꼬장꼬장하게 지내오면서도

빠득 우겨온 내 삶의 힘이

어디론가 간 데 없어진 거 같은.

이제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되었는데도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이런 사춘기 질문이 지워지지 않고

나는 다시는 내가 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상하고도 묘한 감정이 술기운과 함께 올라온다

 

나이를 먹고나서도 나는

내 삶을 인정하지 못할 것만 같고

잘 살았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자기 자랑 혹은 연민조차 못할 만큼

내 자신이 무척이나 망가졌다는 느낌을

나는 매번 회식 때마다 받는다

 

좋은 게 좋은 것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게 미덕이 되고

남들 부러워하는 걸 같이 부러워하게 되는 건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철부지없이도 지금 내가

역겹고 토할 것만 같아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건지 몰라도

나는 늘 예전이 그립고

그 때의 나를 진짜 나라고 생각하면서,

지금은 잠시 지나가는 때라고

진짜의 날 보여줄 때는 아닌 거라고

되지도 않는 거짓말 뒤로

숨어버리고 나면

아까의 술기운은 잠이 되어

나는 또 그렇게 다음 아침을

그렇게 결국 다시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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