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그래비티, J에게

낡은등대 2019. 1. 14. 12:38

 

널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겠지. 너의 우주와 나의 우주가 다르니까. 그래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거 같다고 말을 꺼냈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어. 너와 내가 비슷한 무게의 기대감을 온몸으로 받쳐내고 있었다 하더라도, 종교적 상실감에 같이 휘청거리고 있다 하더라도, 너와 내가 한배에서 태어나고 우리의 어미가 그리도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살고자 함"은 유전적 결함처럼 우리에게 똑같이 부족한 것 같았어.

 

하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거 같아. 생명줄을 놓아버린 맷(조지 클루니)은 라이언(산드라 블록)에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결국 지구로 돌려보냈잖아. "살고자 함"의 부족은 어쩌면 이타성과 연민같은 뭔가 아름답고도 우리 손에 잡히지 않는 것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몰라.

 

맷은 라이언을 떠나면서 갠지스강의 태양을 찬탄했어. 맷은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삶을 향한 본능적인 의지의 부재가 가져오는 아름다움이 갠지스강에 드리운 빛의 황홀경보다 더 고귀하다는 걸 말이야.

 

"살고자 함"의 존재와 부재가 계속 우리를 괴롭힐 때, 오프닝시퀀스의 롱테이크처럼 우리의 삶이 다른 이들의 씬과 끊임없이 이어져 있다는 걸 떠올려 보려고. 우리가 이야기한 것처럼 쇼펜하우어가 "살고자 함", 곧 "의지"가 모든 고통의 원인이라고 말한 걸 떠올리면, 내게서 벗어나 더 큰 생명에 조금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