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직한 줄거리인 사도마조히즘 드라마의 주체는 누구일까. 강간 사건이 이웃집 청년의 결심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을 그가 성적으로 즐긴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연속적인 강간을 종결시킨 것이 일종의 우연이라 하더라도, 심지어 사건 중에 의도치 않게 그가 죽음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이 드라마의 주체는 명백하게도 미셸(이자르 위페르)이다.
자신의 세계에 대한 처연함은 포기나 관조와는 다른 것 같다. 자기의 공백이 없다. 스스로를 자신의 세계에 위치시키고 다가오는 것과 지나간 것을 뚜렷하게 마주한다. 그러면 미래에 대한 공포와 과거에 대한 거짓은 사라지고, 욕망은 날것이 되어 당당히 자리한다.
하지만, 모던한 이 주체는 지속가능할까. 주체는 자체논리에 따라 타자를 만들어내고 타자는 어느 정도 소외된다. 끔찍한 사건을 벌였던 미셸의 아빠의 우주에서 어린 미셸은 소외되고, 미셸의 우주에서 미셸과 간통한 남자의 아내이자 이셸의 동료는 소외된다. 모더니티가 다양성과 너무 많은 논의에 지친 우리의 대안으로 다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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