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 돌리(제니퍼 로렌스)가 안됐다. 연민의 마음이 드는 이유가 뭘까. 뭔가 안됐다 싶다. 정신병을 앓는 어머니와 한참 어린 두 동생을 홀로 돌봐내고 있는데, 그 와중에 아버지는 선고 전에 어디론가 튀어버려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생겼다. 그런 상황은 흔한 상황이 아닌 듯 싶고, 예외적인 불행이라는 게 리 돌리를 좇아가는 것만 같다. 생각해보면 연민의 마음은 그 상황을 초래한 사람이 리 돌리가 아니라는 판단에서 출발한 거 같다. 이제 고작 17살 소녀가 무슨 죄가 크다고 말이다.
2. 그런데 리 돌리는 딱히 누구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원망하며 주저앉아서 원인제공자가 결자해지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녀는 발로 뛰면서 일을 해결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얻어터지고 남에게 신세지는 일체의 비용도 누구에게 청구하지 않는다. 그녀는 굳건하고 차갑게 조금씩 실마리를 스스로 찾아간다.
3. 그 과정이 그야말로 어른의 것이라, 숙연해지고 궁금해진다. 일단 18살이 되지도 못해서 군입대도 제스스로 못하는 나이의 소녀가 그토록 조숙해지도록 만든 무언가의 부피감과 무게 때문에 숙연해진다. 그리고 궁금한 것은, 리 돌리도 자신을 연민할까 하는 것이다. 그녀가 한참 어린 동생들에게 사격술을 알려주고 다람쥐 가죽을 벗겨 요리하는 법을 알려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녀는 삶이라는 과정 자체를 그냥 그렇게 마주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하기싫은 것도 해야하는 것이 있다는 그녀의 말처럼, 리 돌리는 스스로 감내한다, 다가오는 모든 것을 묵묵하고 지리하게 말이다.
4. 책망하자면 미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탓할 수 있겠지만, 그런 느낌을 받진 못했고 그렇게 생각이 들지도 않았다. 리 돌리처럼 다가오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삶 자체가 일종의 장르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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