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아킨 치닉스)의 죽음 충동을 막아내는 건 언제나 타자다. 칼을 입과 발에 내리꽂으려할 때 그를 막아세우는 건 어머니의 음성이었고, 어머니의 시신과 같이 스스로를 깊은 호수에 수장시키려 할 때 보였던 건 니나의 환상이었다. 음식점에서 권총으로 자살하는 상상의 진행을 깨는 것 또한 니나의 부름이었던 걸로 미루어 봤을 때, 조의 죽음 충동은 내부에서 일어나지만 삶에의 의지는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삶에의 의지는 원래 내부적인 거 아닐까. 생명과 영속성에 대한 막연한 지향이 이 복잡한 생태계를 만들어놓았으니 그 의지는 본능에 가까운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해프닝>, <버드박스>같은 영화가 불어놓는 공포감은 뭔가 근원적이면서 불가해적인 매력이 있는 것일테고 말이다.
그런데 조의 경우에는 이 본능의 의지가 내부에서 생성되지 않고 외부에서 주어진다는 느낌이 드니 불안해진다. 그래서 마지막 숏에서 그의 텅 빈 음식점 빈자리가 주는 느낌이 조금은 싸늘했다. 오늘은 좋은 날이라던 니나의 음성이 조에게 오래오래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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