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낮의 취기

낡은등대 2020. 7. 5. 14:41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담배연기에 취한 것도 아니지만

취한 것 같아

어지럽고 이질적인 기분

응 그래 얼마든지

감정에도 취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게 어떤 기분이냐면 말이야

헤엄치는 것 같아

그래 솔직히 난 수영할 줄은 모르니까

헤엄친다기보다는

물에 빠져있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정직하겠지

아무튼 뭔가에 취하면

숨이 막히고

못살겠어

말 그대로 못살겠다는 기분이야

저 위로 올라가면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고

뭍으로 올라가면 되는건데

가끔은 그렇게 올라가기도 하지만

가끔은

때론 종종

그냥 빠져있는 거야

그리고는 그 질식을 느끼는 거야

취해서 죽을 것 같은 그 감정 속에

푹 그 속에 빠져서는

떠다니는 것들을 보면서

숨막히는 질식의 쾌감을 마주해

 

이러다 죽을수도 있겠지

떠다니는 것들이 뭔진 모르지만

그것들이 상어처럼

날 잡아먹어 버릴 수도 있고

때론 내가 그속에 빠져있다는 사실만으로

뭍에 올라갔을 때

온갖 환멸의 말들과 돌들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그래, 정상은 아니지

확실히 정상은 아니야

내 질식 쾌감도

내 감정도

물 속을 부유하고 유영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니까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거잖아

 

환상도 꿈도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면

실재하는 것과 뭐가 다르겠어

내 질식감은 실재하고

나를 빠져죽게 하는 건

설명하기 어려운 이 이상한 느낌인데

이걸 어떻게

없다고

없는 거라고

고갯짓 서너번에 사라지게 할 수 있겠어

 

그렇게 질식하고 있는거야

해는 흐린 날 덕분에 뜨겁지 않지만

여기 물속에서는

수면에 흔들려서

이글거리고 있고

작열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의 환상 속에서

나는 물밑으로 깊이 빠져 들어가고 있어

거기서 내 손은

헤엄치려는 아무 의지도 없이 그저

물 속을 부유하는 것을 향해서

그 손을 향해서

뻗어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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