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토리와 로키타

낡은등대 2023. 5. 21. 11:58


(스포)

1. 증인
  마지막 숲 속에서의 카메라 워킹과 프레임. 마피아가 범행현장으로부터 도주하는 씬에서의 카메라 시선을 미루어볼 때 카메라는 증인의 역할을 수행한다. 범인인 마피아도, 생존자인 토리도 아닌 그 현장의 사실을 증언하는 시선이다. 그 시선은 로키타의 주검과 총상을 끝내 비추지 않는다. 로키타에게 강요된 성범죄에 대해서도 카메라는 프레임에서 로키타의 몸을 이탈시킨다. 시점은 이탈된 것 같지만 여전히 시선은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저 고통을 착취할 뿐 기억하지 않는 시선이 세간에 많지만, 영화는 착취적이지 않은 기록물로 증언하는 것 같다.


2. 사람의 떨림
  그 증언의 주체는 누구인가. 호흡하고 맥박이 뛰는 사람일 것이다. 가만히 있어도 존재라는 과제로 미세한 떨림이 삶에 흐르는 우리. 다르덴 형제의 언텍트톡 버전으로 영화를 봤는데, 형제의 설명대로 롱테이크와 핸드헬드 기법은 "기억을 기록하는" 시선에 참 알맞는 것 같다.

3. 사람들
  토리와 로키타에게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나온다. 로키타의 히치하이킹에 첫 번째로 차를 멈춘 여자는 토리의 존재를 위협으로 오해하고 떠나버리는데 그런 게 나는 좋다. 사람은 언제나 악한 사람도, 언제나 선한 사람도 없으니까. 세상엔 선한 사람도 있고 악한 사람도 있고, 사람도 선할 때가 있고 악할 때가 있다. 사회고발물로서의 영화 '다음소희'가 좀 평면적이라고 생각한 이유와는 정반대의 느낌을 받았다.

* "기억을 기록하다"는 사회적 참사와 고통을 겪은 이들의 음성기록물을 전하는 KBS라디오의 연중기획물이었다. 지금은 버스기사, 편의점알바, 배달라이더 등의 직업적 경험담을 듣는 "낮은 목소리"라는 이름의 프로그램으로 개편되었다. 시민을 "낮다"고 표현하다니. 게다가 배경음악은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음율. 작고 소중한 인생, 이런 의미인가? 출근하는 차 안에서 듣고 경악했다. "낮음"은 "높음"의 대칭물인데, 높은 목소리는 어떤거지? 분명히 윗선에서 컨펌한 내용일텐데 KBS의 감수성이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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