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철근콘크리트

낡은등대 2024. 8. 16. 17:30



휴가를 맞아 카페에 있다.

적당히 모던하고 적당히 시원하다.
벽은 하얀 페인트로 단정하게 칠해져있고
천장은 마감되어 있지 않아 회색의 콘크리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간접조명이 노랗게 가장자리를 비추고 있고
직선의 레일에 달린 조명이 실내를 따뜻하게 밝힌다.
직선의 벽과 직선의 철근. 평평한 콘크리트.
이런 곳은 자연에 없겠지, 상투적인 인상 속에서 나는 자책을 느낀다.

천장에는 LG의 동그란 에어컨이 있다.
마찬가지다, 자연에는 저렇게 동그란 것도 보기 드물 것이다.
자연은 여기 어디 있나?
나, 그래, 나는 유기체니까 자연일 것이다.
그런데 자연의 일부인 나는 자연에 던져져 있지 않음을 감사하다니.

이 만족감에 섞인 내밀한 부도덕함과 함께
내가 자격상실인 존재라는 것을 느끼는데
따지고보면 모든 것이 자연에서 왔을 것이라는 상상으로 이어진다.
철근도 콘크리트도, 내가 잘은 모르지만 그 끝에는 자연물질이 있을 것이다.
설령 외계에서 왔다한들 그것도 자연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저 어쩌면 이 세상은 원초로 돌아가는 운동 자체일까?
결국 우주의 총량은 공이 되도록 말이야.

에어컨을 개발한 사람이 캐리어였나? 프로메테우스다.
프로메테우스는 고통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대신 고통 받아 줄 존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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