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불평등 : 편재성
고립된 덩케르크 가교에서 탈출을 기다리는 보병의 일주일, 구출을 돕기 위해 징발된 배를 직접 몰고 사지로 들어가는 노선장의 하루, 공군 파일럿의 한시간. 세가지 시점이 각각 다른 시간대에서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서로 물리게 되는 서사는 그 구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전쟁의 편재성을 직감하게 해주는 좋은 장치였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정말 말 그대로 언제 어디서나 발발하기도 하지만, 그것의 공포스러운 잔상이 사람들의 삶을 헤집어놓은 것을 일종의 생존력이라고 볼 수 있다면 전쟁은 그야말로 편재하는 괴물이다.
시간의 불평등 : 땅에서 멀수록
세 명의 삶으로 직접 전쟁을 마주하는 느낌을 선사하는 데에는 자신감이 한껏 묻어나는 촬영과 더 이상의 무엇을 기대할 수가 없을 수준의 한스 짐머의 음악이 있었겠지만, 사실 나에게는 일주일/하루/한 시간의 불평등한 시간 배분도 한 몫했다고 느꼈다. 촌스러운 느낌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배낭매고 전국 일주하는 무전여행의 고생스런 시간은 인천 공항 발 해외 여행의 시간과 질적으로 다르다. 별다른 재주가 없어 앞자리 1번대인 보병. 포병으로 복무를 마친 이들의 무용담이 화려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모두가 전장에 있지만, 폭탄이 떨어지고 사체가 즐비한 땅에서 가까울수록 시간은 더디가고 구원의 여명은 흐릿해 보인다. 전쟁의 직접적 목적물인 땅에서 멀수룩 전쟁의 시간은 단축되고 참혹함도 간접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 즈음, 처칠은 전쟁을 몇마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었고, 귀환한 패잔병들은 시민들의 위로에도 자신들의 패배의 시간과 살육의 경험을 쉬이 잊지 못하는 것이다. 공군 파일럿의 위에서 전쟁을 지휘하는 주체들에게 전쟁은 한 시간도 채우기 어려운 체스놀이겠지만, 이것은 시간들의 분명한 누적물이다.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성탈출: 종의 전쟁, 언어와 인간-유사화 (0) | 2017.08.27 |
---|---|
레이디 맥베스,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0) | 2017.08.20 |
박열, 민중에 대한 아름다운 변명 (0) | 2017.07.10 |
겟아웃, 인종차별 풍자가 신박함이 되는 신박함 정도? (0) | 2017.05.21 |
에이리언 : 커버넌트, 창조의 욕망과 친부 살해 (0) | 2017.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