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벌거벗은 육체가 춤을 추고, 해부된 사체가 동식물에게 부자연스럽게 이식되고, 부상당하고 파괴된 신체의 단면이 여과없이 노출되면 그순간 인간 자체가 대상화된다. 평상시 우리 인간종의 특별함에서 자연스레 나온다고 믿고 있는 존엄과 자연권이 별안간 저멀리 떨어져나간다. 이때의 각성적인 쾌감이 있다. 사실 우리도 별거 아니었다는 새롭지 않은 불안은 우리를 새로운 인식의 단계로 상승시킨다.
2. 또하나, 감독의 전작 유전과 마찬가지로 운명론적인 냄새가 난다. 어차피 될놈될인 어떠한 질서. 우리의 처지와 상황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무화되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그 자리를 채울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는 무기력하지만 한편으로는 든든하기도 한 이야기다. 역시 여기에도 쾌감이 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실존주의가 불안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한 것 같다.
3. 사람의 감정을 모방하여 외면화한 마을의 관습(특히 마지막 대니, 플로렌스 퓨, 를 위로하는 마을여자들의 의식)을 볼때, 과연 그것을 남자친구가 보여주지 못했던 감정적인 연대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관습과 전통은 재해석과 변형의 여지가 적고 메시지와 내면이 형식의 뒤로 숨어버리기가 여간 쉬운 게 아닐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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