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묻다

낡은등대 2020. 7. 22. 23:15
뭐든지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았다.
잊고 싶은 기억, 관계,
내 과오, 타인의 상처, 또는 그 반대들.
잘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흔적들은
날 쉽게 놔주지 않아서
가끔은 멀리 도망친 것 같다가도
이내 다시 그 기억과 감각으로 날 당겨감았다.

그 사람과 걸었던 길에서
그 사람은 내게 묻었던 먼지와 기억을 털어주었고,
그 길에서 그 사람이 내게 묻었다.

그 사람이 묻은 것들에서 그 사람을 느낀다.
그 사람이 묻은 차에서, 파주에서,
우리가 함께 한숨 뱉어낸 연기에서
그 사람의 안락한 그늘과 따뜻하고 좋은 냄새를
내게로 끌어와 떠올렸고
그것들이 내게서만큼은 지워지지 않기를
조용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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