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이레셔널 맨, 운명이 정해진 불합리성의 처지란

낡은등대 2016. 8. 11. 22:50



  질(사진 우측)이 끌렸던 에이브 교수의 매력은 제목과 같이 "불합리적"인 데 있었다. 그의 사상은 극단적인 구석이 있었고 그의 삶은 과도하게 침체되어 있었다. 그에게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려 하는 의지마저 결여되어 있었지만, 이것이 그의 매력을 오히려 한껏 끌어올려 주는 모양이다. 모성애를 포함하여, 무엇인가 결여되어 보호가 필요해 보이는 대상에게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또 한편 에이브 교수처럼 그렇게 나사 하나쯤 빠진 채 살고싶은 사람도 있는 법이고, 또 이런 사람들 역시 불합리적인 사람을 매력적인 사람으로 여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불합리성의 패배는 이미 확정된 것이다. 세상의 해충과 같은 인간을 제거함으로 삶의 원동력을 찾아낸 에이브 교수가 대면하게 된 적은 법이었다.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그는 감옥에 갇히게 될 것이고 한동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법이고, 다수가 공유하는 합리성이다. 에이브 교수는 마지막까지 그 합리성의 목을 조르고 합리성의 생명을 저 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싶어했지만, 파편적인 저항 자체는 사실 이미 그의 패배를 암시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싸워서 이길 재간이 없으니 눈이라도 한 번 더 흘긴 셈이랄까.


  안타깝게도 불합리의 생명력은 합리성의 꼬투리를 잡는 데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거 같다. 이미 합리성이 승리를 선포한 지 오랜 지금, 인문학은 시장의 결점을 잡아냄으로 살아남고 페미니즘은 거대화된 권위조직 하에서 유지되며 환경은 자본이 먹다 식탁에서 떨어뜨린 부스러기로 버텨내고 있다. 말장난같지만, 자생력을 갖춘 불합리성을 기대하는 것은 좀 오바라는 말을, 이 영화는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