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부산행, 좀비물인가?

낡은등대 2016. 8. 11. 23:08

 

 

  장르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것이 절대 유능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해당 장르물의 대한 이해를 갖춘 이후에 창의력을 발휘해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이 영화는 대놓고 관객을 가르치고 꾸짖으려고 작정한, 감독이 선생질을 하려고 맘먹고 만든 "꼰대물"의 전형이다.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친절, 배려, 상생 등이 선하고 좋은 거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보여주는 우아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일종의 계도물이자 바른생활 교과서다. 충격적인 몇 장면을 공유하고 싶은데, 나름 몇 가지 좀비물을 흥미롭게 본 나로서는, 착한(?) 할머니가 좀비가 되어서도 공격성을 갖추지 않는 장면이랑, 좀비가 되어가는 순간을 일반적인 죽음이 갖는 상징과 동일하게 치환한 마지막 장면은 최악이었다.

 

  그저 그럴싸한 분장의 좀비가 빠르게 뛰어다니고, 기괴한 몸짓으로 관절을 뒤틀며, 실감나게 살점을 맹수마냥 물어뜯는 게 좀비물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면, 디스토피아에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걸 보여주는 게 좀비물이 담을 수 있는 철학의 최대치라고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DVD 소장을 권장한다. 하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간이 공통으로 지닌 본연의 두려움과 생물학적 한계가 나타나는 걸 관찰하고, 그로 인해 도래하는 커뮤니티의 재생성같은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직 이 영화를 안봤을 리 없지만, 말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