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는 나무와 돌들뿐인 길을 따라 며칠을 걷습니다. 그동안 어떤 사물에 시선이 머무는 일은 매우 드뭅니다. 시선이 머무는 경우는 그 사물을 다른 사물의 기호로 인식했을 때뿐입니다. 모래 위의 흔적은 사자가 지나갔음을 알려주고, 늪지는 수맥을 알려주고, 히비스커스 꽃은 겨울이 끝났음을 알립니다. (중략) 폐하께서는 자신이 타마라를 방문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만, 사실은 그저 도시가 자기 자신과 각 부분들을 정의하는 이름을 기록하고 계실 뿐입니다. ... 도시가 이와 같이 조밀한 기호의 껍질 속에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타마라에서 나올 때에도 도시가 정말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숨기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도시의 아름다움을 음미하기 전에, 이 책을 읽다보면 공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우아한 접근에 몰입하게 될 것이다. 상상 속 도시의 바깥 모습을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가볍게 둘러보고 싶었더라도 이 책을 읽어보시기를. 이탈로 칼비노의 섬세한 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어느 도시를 여행하는 것보다 들뜬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생각지 못한 접근과 해석이 도시들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마치 향신료 내음이 가득한 이국적인 도시의 시장을 분주히 돌아다니는 기분이 나서 어지럽기까지 할 정도다. 이탈로 칼비노가 가이드해준다면 우리는 늘 지겹게 마주하는 서울의 정신사나운 풍경에도 매혹될 것이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구절은 기호와 도시의 관계를 잘 나타내주고 있는데, 우리가 공간을 인지하는 과정이 얼마나 기호와 매개되어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모든 것에 스며들어간 공적인 의미와 개별적인 느낌. 그리고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다른 "것"들과 그것들의 배열 및 조합. 이것들을 걷어내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그 공간 그 자체일까, 혹은 아무것도 아닌 "텅 빔"일까. 그리고 그것은 과연 공간이라 부를 수 있으며 우리에게 인식 가능한 대상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식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수없이 거울 속의 거울을 보는 과정과 같아서 우리는 참된 무언가를 분별할 수 없다. 그것이 이데아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당장 눈 앞에 놓여있는 사물 하나조차 제대로 보지 못하는 거 같다. 이런 우리는 과연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마주하는 것일까. 이국적인 풍경과 높이 솟은 천마루, 진귀한 음식과 멸종위기동물, 신을 떠올리게 하는 오로리와 신선한 더위? 혹은 기호안에 갇혀버려 태어나자마자 곧 질식사해버린 우리의 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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