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Elliott Smith 듣기 좋은 계절

낡은등대 2016. 9. 16. 10:42

 

 

 

소유욕과 본능

 

  소유욕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무언가를 갖고 싶어하는 건 본능이지 않을까. 본능을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본능이 있다면 그건 이겨내기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본능"이란 게 그런 성격의 것일테니까, "본능적인 인간"이라고 누군가를 욕해서는 안될 거 같다. 오히려 본능을 극복한 인간을 대단하다 여긴다면 모를까, 그 앞에 무릎 꿇은 인간을 어찌 손가락질할까. 그건 본능이라는 말의 용법 자체와 모순되는 것이다. 

 

  나도 소유욕이 있는데, 이상하지만 그 대상은 가을이다. 난 가을을 좋아한다. 활기와 열정이 사그라들고 종말을 준비하는 엄숙함과 진지함, 레벨이 떨어지는 채도. 숨을 쉬면 가을의 이름이 내 몸을 깊은 데까지 물들이는 듯한 묘한 느낌. 이런 가을을 누군가도 좋아한다고 하면 정말 바보같은 질투심이 생겨나는데, 특히 2016년 전설적인 더위에 지쳐 가을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질투심보다는 그저 한심한 생각이 들 정도다. 고작 여름에 지쳐 가을을 갈구하다니. 그럼에도 겸손한 가을은 그런 이들에게도 자신의 숨결을 만끽하게 해주는데, 사실 그마저도 매력적이다. 

 

가을 만끽하기

 

  가을을 만끽하기 위해서 난 첫째, 우선 절대 야상을 먼저 꺼내입지 않는다. 기껏 섭씨 온도의 최고 기온 앞자리가 2로 바뀌었다고해서 섣불리 야상을 꺼내입지 않는다. 추위, 차가움, 냉랭함을 느끼기 전까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된다. 어느 순간 가을은 이미 가고 몇 개월동안 널 지겹게 할 겨울이 온 거니까. 둘째, 엘리엇 스미스를 듣는 거지 ㅎㅎ

 

홍대병

 

내가 아는 누군가는 진짜 빨갱이였다. 진짜 공산주의자였다. 그는 정말 모든 가버먼트가 순수한 공산주의를 조금씩 지켜나가고 우리의 공동체가 점점 작아진다면 모든 방면에서 진보할 것이라고 그는 진심으로 믿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알아주지 않았고 모두들 때가 되어 카투사, 대기업, 다수 여당의 보좌실로 발걸음을 옮기며 그를 바보처럼 여겼다. 그리고 그는 꼬장꼬장한 생각을 키워나갔고 말이다.

그런데 어느날 어느 대통령이 정말 참담하고 한심하기 이를 데 없는 능력치를 보여주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자본과 권력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삼척동자까지 운동에 동참하는 그 시국에 그 빨갱이 친구는 진정 기뻐했을까? 자기의 이념이 슬슬 빛을 발하게 되었다고? 그렇지 않았다. 수 년간 소수자로 살아온 그는 그 방면에 홍대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휴.. 그게 어떻게 그의 탓이겠어.

 

아무튼 나는 가을과 포크음악에 홍대병이 있다. 응팔이니 미니멀리즘이니 거대 트렌드에 내 취향 장르들이 수면으로 올라오는 게 썩 나쁜 건 아니지만 썩 좋은 게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엘리엇 스미스는 요즘 같은 날 너무나 옳다. 길가다도 들었으면 좋겠어.

 

 

 

 

 

 

 

 

 

 

*Alan Parsons Project - Eye in the Sky 도 가을을 맞이하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