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헤이트풀8, 아나키스트들을 위한 좋은 변명

낡은등대 2016. 12. 19. 16:57




아나키스트들의 사이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국정기강의 문란 문제가 온 국민의 집중을 받다 보니 많은 담론이 생산, 소비되고 있다. "국가"란 개념도 그러한데, 대체 국가란 무엇이고 더 나아가 국가란 어떠해야 하는지 윤리적인 이야기가 많이 오간다.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할 만한 이야기가 좀 국한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내용은 말 그대로 윤리적인 거 같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며, 국민의 다스림이 국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문장이 절대 진리로, 일종의 정언 명령으로, 계몽적 가르침으로 우리에게 하달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다시 말해, 비록 지금 비선 일당이 권력자를 통해 행세한 국가적 권력은 가짜에 불과하지만, 정당한 대표자가 합법적 절차를 통해 다수의 민의을 대표하여 행세한 권력은 진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건데, 이런 담론에서 국가의 근간에 대해 의심을 품는 아나키스트들은 국가 자체가 갖는 폭력적인 혐의를 고발할 수 없어 숨이 막힌다. 


  그런 점에서 서부영화들은 아나키스트들의 도피처가 되는데, <헤이트풀8> 또한 그러하다. 몇몇 서부영화가 낭만적 소공동체의 발견 혹은 건설을 지향점으로 삼는 반면에 <헤이트풀8>이 아나키스트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방법은 좀 다르다. 우리는 여기서 사법적 절차의 진화 과정 중 한 단면을 목격하고 그 역사성에 대해 맘껏 조롱하고 힐난하며 침을 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피의자에 대한 물리적 폭행, 총기의 사적 소유와 절차를 갖추지 못한 사용, 권한의 남용과 소수자에 대한 멸시가 철학적 소통가능성을 전제로 한 공화주의에서 발견되었다면, 우리는 왜 공화주의에서 여전히 발견되는 사적 소유에 대한 맹신, 이것의 독점적인 상속, 기소의 독점주의 같은 것들도 근거 없는 두려움들을 힘입은 오류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까?


  요새 국가를 향해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었는지 묻는 영화가 참 많다. 씨네21에서 읽은 거 같은데, 문화란 과잉을 말하지 않는다 했다. 그런 면에서 <헤이트풀8>을 늦게 보았지만, 참 사이다같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