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반핵영화, 절반은 반정부영화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정된 시점이 올해 하반기는 아니었을테니 최근의 국정 혼란 사태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가 쓰여진 것은 아니겠지만, 어떠한 시의성이 보편성으로 읽힐 만큼 무능력과 부패가 일상이 되어버린 탓인지 이 영화를 보고 현정부의 모습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나는 문화의 고귀함과 영험함을 숭상한다. 이미 어떤 이야기가 엄청나게 소비되는 와중에 거기에 숟가락 하나 더 얹어보려는 심산이 빤히 보이는 컨텐츠를 좀 꺼려하게 되던데, 요새 개콘이 그렇고 Bad year를 발표한 산이라는 사람이 그렇고 또 이런 영화들이 좀 그렇다. 아무튼 그런 생각이 들만큼 이 영화는 반정부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반관료주의적이고 반부패적인 태도가 적나라하게 전시되는데 나는 이게 반핵영화로는 결점이 아니었나 싶다.
<판도라>에서 핵이 문제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은 비정상적인 정부, 그것뿐이다. 관료적인 정부의 폐쇄성과 매뉴얼대로 처리하지 않는 편의주의, 폐로 결정을 유보하고 어떻게든 이익을 지키고 싶어하는 이기주의가 원전 사고를 만들어냈다고 영화는 기록한다. 바꿔 말하면, 유능한 정부 하에서의 원전은 충분히 안전하고 깨끗한 "밥통"이 될 수 있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는 게 나는 좀 꺼림칙하다.
따라서 이 영화에 대해 반핵 정서를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사람들의 가려운 점은 어떤 모양으로든 긁어주는 모양인 거 같다.
그럼에도 반핵적이랄까
하지만 좋은 부분이 몇 군데 있었다. 수증기(?였던가. 여하튼 이게 퍼지면 지역 주민은 피폭되는 모양이다)를 방출하지 않으면 폭발한다는 전문가의 소견에도,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대신해 지역 주민더러 피해를 받으라고 강요한 권리가 우리에겐 없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가장 선한 역으로 분한 소장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그것을 방출하기 위해 애를 쓰는, 다소 묘한 갈등이 흥미로웠다. 대통령과 소장 모두 극 중 선한 축에 들어가는 입장이었고 이들의 의견은 모두 윤리적으로 일리가 있었음에도 핵 앞에 충돌되었다. 또한 이후 현장에서는 원전 붕괴 이후 발전소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구하라는 소장과, 들어가면 우리도 죽는다는 태도로 그것을 거부한 소방관들의 갈등도 그러했는데, 핵 앞에 다시 한 번 부딪힌 이들의 주장에 우리는 섣불리 누구 편을 들 수 없다는 걸 느낀다. 선/악, 소시민/영악한 거물의 진영이 있다면 이들 모두 전자에 포함되다보니 순간적으로 아이러니함과 혼란을 마주하게 되면서 핵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다는 걸 실감한다. 핵 앞에 인간은 압도되고 선함은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되며, 종국에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극중 대통령처럼 무기력함을 고백하게 된다. 바로 그런 통제 불가능함 속에 지역 주민과 시민 단체가 느끼고 공유하고자 하는 공포심의 원류가 들어있는 것인데 왜 자꾸 그 탓을 반복적으로 무능한 정부, 한심한 대통령, 주제 파악 못하는 총리에게 돌리는지, 전략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무튼 앞서 말한 점에서 지겨운 신파(모성을 눈물로 파는 건 정말 별로다)와 재난 묘사를 티켓 파워로 삼는 블록버스터지만 의외의 진지한 구석을 엿보이는 영화이기도 하다. 물론 순수 재난영화를 기대하기엔 다소 신파가 넘치고, 반핵 영화를 기대하기엔 꽤나 반정부적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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