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거운 만큼
2008년 홍콩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스릴러 영화인데,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게 되려 악평의 이유로 작동하는 모양이다. 일각에서는 교차 편집의 매끄럽지 못한 연결 뿐만 아니라, 긴장감 없이 밝혀져 가는 사건의 전말, 대단치 못하게 그려지는 주인공의 심리적 붕괴를 혹평의 이유로 삼는 거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일종의 방어를 진심으로 해주고 싶은데, 그녀의 죽음을 그녀의 심리적 외부자인 우리가 납득할 수 있도록 포장하는 게 과연 옳을까 싶어서이다. 조금 더 진심을 담아 말하자면, 우리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얼마나 정서적으로 설득되었는지와 무관하게 이 영화에 나타난 그녀의 죽음은 사실이고, 이 영화에 나타난 그녀가 죽음에 이를 때까지 겪었을 좌절, 불안, 심리적인 자학, 공포, 때로는 몽롱함과 무질서, 미소까지도 그녀 자신에게는 죽음의 이유와 과정으로 충분하였을 거다 싶다.
물론 영화적 완성도가 미비해도 관계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실화 영화에 대해서는 이러한 봐주기가 좀 용인되는 거 같다. 특히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영화라면 오히려 이러한 싱거운 느낌이 더욱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데, 탄생과 죽음은 심각하지만 동시에 심각할 수 없을 만큼 빈번히 일어나는 우리의 일상이며 때로는 과도한 엄숙주의를 걷어낸 이후에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주인공의 생애 주기를 겪지 않았고, 비록 동일한 상황을 겪었다한들 우리의 심리적 상태가 달랐을테니 나는 그녀 자신이 되지 않는 이상 결코 그녀의 죽음을 경험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가 심심한만큼 이 영화와 주인공의 죽음에 위로(라는 말이 가할지 모르겠으나)와 격려의 맘을 보낸다. 드라마적인 역동성이 부족하단 이유로 토크쇼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에 MSG를 치는 게스트들도 나는 진심으로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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