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자전거 탄 소년, 상실한 마음 앞에서 정상성을 말하며

낡은등대 2017. 5. 8. 20:02



 

  그 날은 유독 즐거운 날이었습니다. 공이나 총을 쥐게 된 사내아이들에게서 흔히 볼 법한 도전정신 대신, 회피와 침묵을 일종의 처세로 품고 지낸 꼬마도 어쨌든 어른이 된다는 걸 저는 몸소 증명해냈지만, 사실 이렇게 친구가 적어질 거라는 건 몰랐습니다. 그 날은 대단한 인내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제 곁에 남아준 친구를 만나는 날이었고, 타고난 데다가 고도로 개발된 소심함 덕에 자기 속내를 어디에나 풀지 못하는 저로서는 그야말로 신나는 날이었던 겁니다.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 앞에서 저는 말의 배설에 취했버렸는데, 우리는 하필 그때 정상성을 논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곱게 배양되지 못한 사회성 덕에, 부모의 그늘 대신 자기 표현의 억제 속으로 숨어들어가 외로움을 달래야했던 친구 앞에서 비정상은 없노라고 별 생각없이 선언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모더니즘의 선형성에 대한 신랄한 맞장구 비판을 기대한 제게 친구는, "그래도 내가 보낸 시절이 정상은 아니었단 얘기는 위로가 돼"라고 나직이 말하면서도, 저의 무안함을 배려해 이어지는 말을 막으려는 듯 술잔을 비웠습니다.

 

  결핍을 겪은 이들이 마주하는 공허는, 과연 정상성의 헤게모니를 획득한 다수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만든 이데올로기의 공명에 불과할까요? 심리상담 후 20년 만에 자기 연민의 감정을 토해내는 친구의 붉은 눈시울과 차 안에서 얼굴을 긁었던 소년의 붉은 자해자국을 볼 때, 저는 이에 대해 잘 안다는 듯이 전처럼 말하지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