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987, 연희의 역사

낡은등대 2018. 1. 17. 21:39

 

1. 영화 속 연희의 동태는 상당히 수동적이다. 연희의 무력감과 불안함, 그리고 뒤따르는 각성과 행동은 모두 남성에 의해 매개된다. 아빠의 죽음, 삼촌의 고문, 이어지는 짝사랑의 불행까지 모두 남성성의 부재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

 

2. 그러나 동시에 그러하기에 역사적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동력을 얻기 위함이라는 명분 하에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수뇌부의 권위주의가 이뤄졌다는 사실을 비판한 연구는 수도 없이 많다. 연희의 수동성은 그 시대의 남성권력을 방증하는 것이며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었음을 보여주는 일례다.

 

3. 시대의 운동성은 항상 준엄하지도 않고 매번 일관적이지도 않다. 또한 그러해야만 한다. 그 속에서 모두가 다양한 장르로 무대에 오를 수 있는 법이다. 일관되지 않은 호흡과 고르게 등장하는 주인공들을 보여준 연출은 이 점에서 시민 운동의 미래를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