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이 제대로 왔다. 이게 불면증이 맞는진 모르겠지만.
일단 곯아떨어지기는 한다. 포만감 있게 저녁식사를 가진 후에 잠이 오기도 하고 야근 후 피로감에 눈이 감기기도 한다.
문제는 새벽즈음 잠이 깨서 그 뒤로는 잠이 안온다는 거다. 졸립고 피곤한데 잠이 안온다는 게 무슨 말안되는 소리인가 싶었는데.
오늘은 처가꿈을 꿨다. 처가에 있었다는 게 무슨 악몽이라고 잠이 깬건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꿈속의 난 처가에 있었다. 잠시 산책을 하고 다시 들어서는데 골목길 어귀에 들어서자 문 앞에 서 계신 장모님이 보인다. 나와 눈이 마주친 장모님은 버선발로 달려오셔서는 내 손님이 와계시다는 거다. 처가에 내 손님이 와있다니, 무슨 수로 내가 여기 있는지 알고.. 아니 그보다는 내 처가의 위치를 어떻게 알고 왔을까. 이상하게 이런 생각이 그 손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보다 더 앞섰다.
이런 꿈을 꾸다 깨서는 지금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새벽에 잠이 깨면 꿈이 생생해서 그런지 마치 꿈자체 때문에 잠이 깬 것만 같다. 사실은 깊이 잠을 못잤기 때문에 항상 꿔왔던 꿈들 중 마침 그 꿈이 잘 기억에 남아있는 거 뿐이라나 뭐라나. 특정한 꿈의 내용이 잠을 깨운 건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꿈의 내용은 내 불면증과는 상관이 없는건데도 선잠이 깨어버리면 괜한 시비가 붙어 꿈의 내용과 불면증을 연결지어버리게 된다. 마치 그것들이 나의 숙면과 안녕을 해치고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꿈의 기억은 불면의 결과일 뿐인데 불면의 원인으로 꿈을 지목하는 것처럼, 잘못된 인과관계가 얼마나 내 기억에 누적되어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비난받을 만한 일들을 많이 하고 살았고 난 그때마다 나름대로 교묘히 비난을 피해갔다. 적어도 스스로에게는 그랬다. 남들은 정확히 사실을 알아차리고 날 비난해왔을지는 몰라도, 내 자신에게만큼은 내 악덕을 잘 숨겨왔다. 특히 관계의 파국에 대해 남에게 원인을 짐지우는 건 내 특기였다. 갈라서게 된 친구, 애인, 동료들은 아마도 그런 면에서 내 뻔뻔함에 치를 떨 게 분명하다. 난 관계의 마지막에 이르면 사과하지 않으면서 사과를 받아냈고 비난받지 않으면서 비난을 쏟아내곤 했으니까. 내 배덕함과 이기적인 욕심은 그들의 사소한 말실수에 비하면 늘 별 게 아닌 것마냥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특히나 미안했던 사람들이 몇몇 떠오른다. 그 중에는 오늘 꿈속에서 처가에 찾아왔던 그 손님도 있다.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과의 말도 건네지 못하고, 이제는 더 아프지 않냐고 그곳에서는 편히 쉬고 있느냐고 안부의 말을 건네지 못한 게 아쉽다. 아쉬워할 자격이 없다는 건 잘 알지만 얼핏 봤던 그 손님의 모정어린 미소가 계속 잔상이 되어 마음 어딘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