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86

칠드런 오브 맨, 희망을 품을 자격

디스토피아 영화 에서 정재영이 분한 남자 김 씨는 무인도에서 날 것들을 구워 먹으며 연명한다. 강 너머 빌딩들이 숲을 이룬 도시 공동체에서 발휘할 길이 없었던 그의 생존 능력 덕분에 더 이상 무언가를 먹을 걱정을 덜게 되자 김 씨는 짜파게티가 당긴다. 난 이 영화를 VOD로 시청하다 미처 끝을 보지 못하고 잠들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자극적인 맛을 갈구하게 된 김 씨가 자기 몸에서 나는 땀이 짜다는 사실을 깨닫고 쉴 새 없이 자기 몸을 핥아대는 장면이었다. 난 왜 그 사실을 몰랐을까. 김 씨는 왜 우연히 그 사실을 겨우 발견했던 걸까. 땀을 흘릴 만큼 몸을 굴려가며 일하지 않은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사실 그 날도 라면을 먹고 포만감을 이기지 못해 잠들었던 만큼 얼마든지 짠 맛..

영화이야기 2016.10.08

블루 재스민, 우울감

우디 앨런의 덤덤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블루 재스민"은 참 우울하다. 남편의 탁월한 사업수단과 사기꾼 기질에 편승하여 상위 계급의 영화를 누린 재스민이 자력을 통해 과거의 위치로 회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여동생의 집에 얹혀 지내는 그녀가 그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곤 병원에서 손님을 맞거나 바코드를 찍는 일 정도일테고, 만날 수 있는 남성의 범주도 뻔한 데다가, 이제 재스민이 남성에게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밑천도 바닥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요직에서 근무하고 있는 드와이트와 통화 중 거짓말로 자신을 포장한 재스민이 전화기를 끄고 터뜨린 울음은 지나가는 듯이 짧게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강한 임팩트를 갖는다. 그건 상기 언급한 바와 같이 요원해보이는 그녀의 재기 가능성과 매우 밀접하다. 이..

영화이야기 2016.09.26

카페 소사이어티, "일장춘몽"의 정치성

꿈같이 흘러가는 인생 (줄거리 스포) 바비(제시 아이젠버그)는 영화계의 거물 외삼촌과 일하러 할리우드로 떠난다. 그곳에서 보니(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에겐 이미 남자친구가 있다. 하지만 진심은 통하는 법인지, 보니가 유부남인 남자친구에게 차인 기회를 틈 타 바비는 적극적으로 구애하게 되고 결혼을 꿈꾸는 관계로 발전시키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유부남 남자친구는 외삼촌이었고, 외삼촌은 이혼을 결심하고 보니를 선택하기로 작정한 끝에 보니를 바비로부터 채어간다. 이렇게 사랑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되돌아온 바비는 갱스터인 친형의 클럽을 같이 운영하는데, 할리우드에서 얻은 인맥과 뛰어난 상술을 이용해 결국 사교계의 거물이 된다. 클럽에서 만난 한 미인과 가정을 이루고 성공가도를 달리던 중, ..

영화이야기 2016.09.24

매그니피센트7, 정치적 올바름

사실 원작이 있는지도 모르고 봤다. 60년대 영화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영화라고 한다. 리메이크 영화를 뜯어보는 과정은 항상 원작과의 비교가 동반되게 마련이던데, 원작을 못봤다. 다 인종적, 다 젠더적 연합체가 제국주의적 공격성을 함의하는 듯한 백인 남성 집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목가적 커뮤니티에 자유를 되찾아주는 일련의 과정이 이번 버전의 독특한 줄거리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장면이 있다. 첫 번째는 인디언 머리 가죽을 벗기는 일로 돈을 벌었던 뚱뚱한 백인 남성의 최후를 묘사한 장면인데(이하 스포 있음), 그는 마을을 침략한 악당 백인 남성들에게 고용된 인디언에게 활로 죽임을 당한다. 이 주인공 백인 남성은 줄창 성경 구절을 암송하고 다니는데, 과거 인디언을 학살해댔던..

영화이야기 2016.09.14

최악의 하루, 진짜와 솔직함

A : 영화 어땠어? B : 아트하우스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은 보통 가산점이 붙잖아ㅎㅎ A : 높은 점수는 어디서 나온 거야? B : 우선 주제가 흥미로웠어. 감독이 친절하게 주제를 군데군데에서 꼭 짚어 말해줘서 큰 고민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기도 했고. 근데 주제를 잘못 짚었으면 어쩌지? A : 주제가 뭐였다고 생각해? B : 내 생각에는, 한마디로 진짜와 솔직함인 거 같아. 일단 주인공부터가 배우잖아. 남주는 소설가이고. 첫 만남에서 둘 다 자기가 하는 일이 거짓말을 하는 거라고 소개하는데, 재미있지. 한 명은 글로 거짓말을 늘어놓는 사람이고 다른 한 명은 말과 행동으로 거짓 상황을 연출하는 사람이니까. A : 너무 극단적인 자기소개였던 거 같아. B :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그 점이 재미있었다고..

영화이야기 2016.09.03

굿 윌 헌팅, 천재에게 바치는 헌사

드라마의 교본 드라마는 호흡이 느릴수록, 때로는 다소 지루할수록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우리 삶이 항상 역동성으로 충만하지 않을진대, 누군가의 삶을 그리고 그 속에서 나타나는 일련의 변화를 보여주는 드라마는 때로 답답한 전개 양상을 보여줄 때 더욱 리얼해 보이니까 말이다. 굿 윌 헌팅의 호흡은 빠르지 않고 화면의 전환도 빈번치 않다. 그 유명한 "It's not your fault"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격렬한 감정이 묘사되는 부분도 많지 않다. 설령 있다 한들 신파로 우리에게 각인되지 않는 이유는 무척이나 일상적이고 친근한 감정으로 우리에게 소화되기 때문이다. 천재들 드라마의 교본이라고 해서, 이 영화를 통해 인생의 위로를 얻고자 다시 보고자 한다면 다소 후회할 가능성도 없진 않다. 윌 헌팅..

영화이야기 2016.08.24

부산행, 좀비물인가?

장르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것이 절대 유능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해당 장르물의 대한 이해를 갖춘 이후에 창의력을 발휘해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이 영화는 대놓고 관객을 가르치고 꾸짖으려고 작정한, 감독이 선생질을 하려고 맘먹고 만든 "꼰대물"의 전형이다.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라서 친절, 배려, 상생 등이 선하고 좋은 거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건 이 보여주는 우아함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일종의 계도물이자 바른생활 교과서다. 충격적인 몇 장면을 공유하고 싶은데, 나름 몇 가지 좀비물을 흥미롭게 본 나로서는, 착한(?) 할머니가 좀비가 되어서도 공격성을 갖추지 않는 장면이랑, 좀비가 되어가는 순간을 일반적인 죽음이 갖는 상징과 동일하게 치환한 마지막 장면은 최악이었다. 그저 그럴싸한 분..

영화이야기 2016.08.11